“군부독재와 성적지상주의 때문에 동시·동요·동화가 실종되다시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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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색동회
작성일 13-05-03 12:49
조회 2,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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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세 대구 최고령 동시 작가 김상문씨가 진단한 아동문학의 현주소
아동문학은 결코 기존 문학의 하부 장르가 아닌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강조하는 아동문학가 김상문씨. 그는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더욱 좋은 동시가 나와야 하고 이를 동요로 작곡해 아이들에게 부르도록 어른들이 앞장서야 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강조한다. 그가 60년대 나온 지역 아동문학가들의 작품집인 ‘오손도손’ 복사본을 보여주고 있다.
‘동심(童心)’이 실종된 어린이날.
그 실종이 누구의 책임인지 우리 문학인은 더 이상 고뇌하지 않는다. 동심이 멍드는 것보다 자기 문학적 위상이 흔들리는 걸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설상가상 아이들은 더 이상 동시·동화·동요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런 걸 유치하게 여긴다. 부모도 아이가 약해진다면서 동심에 심취되는 걸 거부한다. 그런 정서에 기대기보다 야물고 재빠르고 재치 있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아이는 스마트폰과 학원 사이를 오가며 ‘어른 배끼기’에 혈안이 돼 있다. 그게 온전히 아이의 잘못일까? 왜 아이와 아동문학가는 눈높이에서 대화를 못하게 됐는가. 1950~60년대 그 우뚝하고 찬연했던 아동문학의 위상은 너무나 초라해져 버렸다. 현재 대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동시작가 김상문씨(83). 그를 만나 아동문학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동시작가 김상문
“평생 15권의 동시집을 펴냈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동심은 더 이상 동심다워지지 않고 자꾸 어른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아이가 아이를 혹사시키는 게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좀 편하게 놀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된 셈인지 어느 날부터 골목에서 아이 뛰노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행복을 성적순으로 아는 학부모의 욕심이 아이에게 공부란 족쇄를 무턱대고 채우고 있는 겁니다. 학원버스에 앉아 무채색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 아이의 시들어 버린 동심을 보면 더 이상 동시를 쓰고 싶은 맘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죽을 때까지 한 명의 아이라도 명실상부한 동심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를 창작해야겠죠.”
그가 지난 시절 절정기의 인기를 누렸던 한국 아동문학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대구·경북이 한국 아동문학의 산실’이란 점도 강조한다.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은 1924년 윤극영이 ‘반달’을 작곡하던 시점입니다. 이듬해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이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로 시작되는 ‘오빠생각’을 발표합니다. 또한 윤석중과 함께 국내 아동문학가의 여명기를 밝혔던 대구 출신의 윤복진은 ‘물새발자국’이란 동시를 발표해 전국적 명사가 됩니다. 이어서 경산 출신인 김성도는 가장 성공한 동요 중 한 곡인 ‘어린음악대’란 동시를 발표하죠.”
대구아동문학회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단체 가운데 하나다.
“1957년 3월3일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운강, 여영택, 이민영, 신송민, 정휘창, 서월파, 윤혜승, 서광민, 박인술 등이 달성공원 앞에 있었던 원화여고 교장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이응창을 초대회장으로 선임합니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라서 모든 게 열악했습니다.이 회장은 자기 집에 회원들을 모아 접대도 하고 야외에 소풍을 갈 때도 경비를 부담하면서 대구아동문학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는 신문사에서 사명감을 갖고 동시·동요 청탁을 자주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요즘 일반 시인·수필가보다 아동문학가가 더 각광 받았다.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에서는 좋은 아동문학가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원화여고·계성고·대륜고 등에서는 자체 동시백일장을 열었고, 지역 방송국 전속 어린이합창단은 향토인기연예인으로 각광을 받는다.
신문사도 별도로 아동문학란을 뒀다. 사회 각분야에 아동문학이 스며들어가 있었고 자연 아동문학가의 위상도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현득의 ‘고구려 아이들’, 김녹촌의 ‘연’, 김종상의 ‘흙손 엄마’. 최춘해의 ‘시계가 셈을 하면’ 하청호의 ‘어머니 등’ 등 지역에서 잉태된 주옥 같은 동시가 많다고 자랑했다.
◆아동문학은 왜 추락하게 됐는가
그런데 왜 아동문학이 추락하게 됐는가.
“군부독재로 인해 아동문학보다 상대적으로 참여·저항·민중시 등이 더 어필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문명의 이기가 폭증하고 학원경쟁시대에 휘둘리면서 동시·동요가 소외를 받기 시작합니다. 또한 저급한 출판사가 우후죽순 생겨나 영리 목적으로 국수 빼듯 아동문학가를 양산시켜 버렸어요. 고결했던 아동문학 시장이 점점 혼탁해지고 상혼에 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상주가 ‘동시의 고장’임을 알려준다.
“50~60년대는 정말 아동문학의 황금기였습니다.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영주 소백동인, 김천은 저를 중심으로 김천아동문학이 꽃을 피웁니다. 특히 윤석중은 상주를 ‘동시의 마을’이라고 명명해주었습니다. 당시 상주에 국내 아동문학계의 거목인 신혁득, 김종상, 이오덕 등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상주 지역 행사에 많이 지원을 했어요. 김천을 축으로 한 전국교단아동문학에서 ‘은방울 문예지’를 발간한 것도 평가받을 만하죠. 그때 회원 중 살아 있는 사람은 저와 최춘해씨뿐입니다. 지금도 신현득의 정말 짧은 ‘문구멍’이란 동시가 생각나요.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진다. 우리 아기 키가 큰다’ 바로 그런 게 어른들한테도 감동을 주는 명 동시죠.”
그는 조만간 아동문학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할 거라고 믿는다.
“요즘 일반 시는 너무 난해해요. 기존 시인들도 변별성 없는 난해함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동요와 동화 창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강조하지만 아동문학은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란 사실을 다른 문인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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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문학은 결코 기존 문학의 하부 장르가 아닌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강조하는 아동문학가 김상문씨. 그는 동요를 부르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 더욱 좋은 동시가 나와야 하고 이를 동요로 작곡해 아이들에게 부르도록 어른들이 앞장서야 나라의 미래가 밝다고 강조한다. 그가 60년대 나온 지역 아동문학가들의 작품집인 ‘오손도손’ 복사본을 보여주고 있다.
‘동심(童心)’이 실종된 어린이날.
그 실종이 누구의 책임인지 우리 문학인은 더 이상 고뇌하지 않는다. 동심이 멍드는 것보다 자기 문학적 위상이 흔들리는 걸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설상가상 아이들은 더 이상 동시·동화·동요에 감동하지 않는다. 그런 걸 유치하게 여긴다. 부모도 아이가 약해진다면서 동심에 심취되는 걸 거부한다. 그런 정서에 기대기보다 야물고 재빠르고 재치 있는 아이가 되길 바란다. 아이는 스마트폰과 학원 사이를 오가며 ‘어른 배끼기’에 혈안이 돼 있다. 그게 온전히 아이의 잘못일까? 왜 아이와 아동문학가는 눈높이에서 대화를 못하게 됐는가. 1950~60년대 그 우뚝하고 찬연했던 아동문학의 위상은 너무나 초라해져 버렸다. 현재 대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동시작가 김상문씨(83). 그를 만나 아동문학의 현주소를 진단했다.
◆동시작가 김상문
“평생 15권의 동시집을 펴냈어요. 그런데 아이들의 동심은 더 이상 동심다워지지 않고 자꾸 어른스러워지고 있습니다. 큰일입니다. 아이가 아이를 혹사시키는 게 아니라 어른이 아이를 혹사시키고 있습니다. 좀 편하게 놀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된 셈인지 어느 날부터 골목에서 아이 뛰노는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습니다. 행복을 성적순으로 아는 학부모의 욕심이 아이에게 공부란 족쇄를 무턱대고 채우고 있는 겁니다. 학원버스에 앉아 무채색 표정으로 창밖을 보고 있는 아이의 시들어 버린 동심을 보면 더 이상 동시를 쓰고 싶은 맘이 없어집니다. 하지만 어떻게 합니까. 죽을 때까지 한 명의 아이라도 명실상부한 동심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동시를 창작해야겠죠.”
그가 지난 시절 절정기의 인기를 누렸던 한국 아동문학의 발자취를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그러면서 ‘대구·경북이 한국 아동문학의 산실’이란 점도 강조한다.
“한국 근대문학의 출발점은 1924년 윤극영이 ‘반달’을 작곡하던 시점입니다. 이듬해 대구 출신의 작곡가 박태준이 ‘뜸북뜸북 뜸북새 논에서 울고 뻐꾹뻐꾹 뻐꾹새 숲에서 울 제…’로 시작되는 ‘오빠생각’을 발표합니다. 또한 윤석중과 함께 국내 아동문학가의 여명기를 밝혔던 대구 출신의 윤복진은 ‘물새발자국’이란 동시를 발표해 전국적 명사가 됩니다. 이어서 경산 출신인 김성도는 가장 성공한 동요 중 한 곡인 ‘어린음악대’란 동시를 발표하죠.”
대구아동문학회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학 단체 가운데 하나다.
“1957년 3월3일 이응창, 김성도, 김진태, 윤운강, 여영택, 이민영, 신송민, 정휘창, 서월파, 윤혜승, 서광민, 박인술 등이 달성공원 앞에 있었던 원화여고 교장실에서 창립총회를 열고 이응창을 초대회장으로 선임합니다. 당시는 한국전쟁이 끝난 뒤라서 모든 게 열악했습니다.이 회장은 자기 집에 회원들을 모아 접대도 하고 야외에 소풍을 갈 때도 경비를 부담하면서 대구아동문학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당시는 신문사에서 사명감을 갖고 동시·동요 청탁을 자주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요즘 일반 시인·수필가보다 아동문학가가 더 각광 받았다. 아동도서 전문 출판사에서는 좋은 아동문학가를 잡으려고 혈안이 돼 있었다. 원화여고·계성고·대륜고 등에서는 자체 동시백일장을 열었고, 지역 방송국 전속 어린이합창단은 향토인기연예인으로 각광을 받는다.
신문사도 별도로 아동문학란을 뒀다. 사회 각분야에 아동문학이 스며들어가 있었고 자연 아동문학가의 위상도 대단히 높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신현득의 ‘고구려 아이들’, 김녹촌의 ‘연’, 김종상의 ‘흙손 엄마’. 최춘해의 ‘시계가 셈을 하면’ 하청호의 ‘어머니 등’ 등 지역에서 잉태된 주옥 같은 동시가 많다고 자랑했다.
◆아동문학은 왜 추락하게 됐는가
그런데 왜 아동문학이 추락하게 됐는가.
“군부독재로 인해 아동문학보다 상대적으로 참여·저항·민중시 등이 더 어필되기 시작했습니다. 아이들을 유혹하는 문명의 이기가 폭증하고 학원경쟁시대에 휘둘리면서 동시·동요가 소외를 받기 시작합니다. 또한 저급한 출판사가 우후죽순 생겨나 영리 목적으로 국수 빼듯 아동문학가를 양산시켜 버렸어요. 고결했던 아동문학 시장이 점점 혼탁해지고 상혼에 찌들기 시작합니다.”
그는 상주가 ‘동시의 고장’임을 알려준다.
“50~60년대는 정말 아동문학의 황금기였습니다. 경북 북부지방에서는 영주 소백동인, 김천은 저를 중심으로 김천아동문학이 꽃을 피웁니다. 특히 윤석중은 상주를 ‘동시의 마을’이라고 명명해주었습니다. 당시 상주에 국내 아동문학계의 거목인 신혁득, 김종상, 이오덕 등이 활동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상주 지역 행사에 많이 지원을 했어요. 김천을 축으로 한 전국교단아동문학에서 ‘은방울 문예지’를 발간한 것도 평가받을 만하죠. 그때 회원 중 살아 있는 사람은 저와 최춘해씨뿐입니다. 지금도 신현득의 정말 짧은 ‘문구멍’이란 동시가 생각나요. ‘빠꼼빠꼼 문구멍이 높아진다. 우리 아기 키가 큰다’ 바로 그런 게 어른들한테도 감동을 주는 명 동시죠.”
그는 조만간 아동문학 제2의 전성기가 도래할 거라고 믿는다.
“요즘 일반 시는 너무 난해해요. 기존 시인들도 변별성 없는 난해함에서 벗어나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동요와 동화 창작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고 있습니다. 강조하지만 아동문학은 모든 문학의 출발점이자 종착역이란 사실을 다른 문인들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춘호기자 leekh@yeongna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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